갈무리

[책] 고백록 - 성 아우구스티누스

네레이드 2023. 1. 23. 22:59

[원 / 라]

 

(1, 5, 6) Angusta est domus animae meae, quo venias ad eam: dilatetur abs te. Ruinosa est: refice eam. Habet quae offendant oculos tuos: fateor et scio. Sed quis mundabit eam? Aut cui alteri praeter te clamabo: ab occultis meis munda me, domine, et ab alienis parce servo tuo? Credo, propter quod et loquor.

 

(2, 3, 5) Cui narro haec? Neque enim tibi, deus meus, sed apud te narro haec generi meo, generi humano, quantulacumque ex particula incidere potest in istas meas litteras. Et ut quid hoc? Ut videlicet ego et quisquis haec legit cogitemus, de quam profundo clamandum sit ad te. Et quid propius auribus tuis, si cor confitens et vita ex fide est?

 

(2, 6, 13) Nam et superbia celsitudinem imitatur, cum tu sis unus super omnia deus excelsus. Et ambitio quid nisi honores quaerit et gloriam, cum tu sis prae cunctis honorandus unus et gloriosus in aeternum? Et saevitia potestatum timeri vult: quis autem timendus nisi unus deus, cuius potestati eripi aut subtrahi quid, quando aut ubi aut quo vel a quo potest?

 

(2, 7, 15) Qui enim vocatus a te secutus est vocem tuam, et vitavit ea, quae me de me ipso recordantem et fatentem legit, non me derideat ab eo medico aegrum sanari, a quo sibi praestitum est, ut non aegrotaret, vel potius ut minus aegrotaret, et ideo te tantundem, immo vero amplius diligat, quia per quem me videt tantis peccatorum meorum languoribus exui, per eum se videt tantis peccatorum languoribus non inplicari.

 

(3, 7, 13) Cum in uno homine et in uno die et in unis aedibus videant aliud alii membro congruere, et aliud iam dudum licuisse, post horam non licere, quiddam in illo angulo permitti aut iuberi, quod in isto iuxta vetetur et vindicetur, numquid iustitia varia est et mutabilis? Sed tempora, quibus praesidet, non pariter eunt; tempora enim sunt. Homines autem, quorum vita super terram brevis est, quia sensu non valent causas contexere saeculorum priorum aliarumque gentium, quas experti non sunt, cum his quas experti sunt, in uno autem corpore vel die vel domo facile possunt videre, quid cui membro, quibus momentis, quibus partibus personisve congruat, in illis offenduntur, hic serviunt.

 

 

[역 / 한]

 

(1, 5, 6) 내 영혼의 집은 주님이 들어 오시기에는 너무 좁사오니 넓혀 주시고, 폐허로 변해 황폐해져 있사오니 회복시켜 주십시오. 또한, 거기에는 주님의 눈에 거슬릴 것이 뻔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고, 또한 고백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아니시면, 누가 그것을 깨끗이 치워주겠습니까? 또한 주님이여, 내가 주님 외에 누구에게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소서"라고 부르짖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2, 3, 5) 나는 지금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나는 이 얘기를 나의 하나님께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하나님 앞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즉 어쩌다가 이 글을 읽게 될 소수의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목적으로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나의 목적은 나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에게는 "깊은 곳"이 있고, 우리는 그 "깊은 곳에서" 주님께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고백하는 것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2, 6, 13)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만유 위에 높이 계시는데도, 인간의 "교만"은 주님의 높으심을 흉내 내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영원토록 만유 위에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것이 마땅한데도, 인간의 "야심"은 자신이 영광과 존귀를 받으려고 합니다. "권력자들의 잔인함"은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두려워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주님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누가 언제 어디에서 주님의 권세로부터 벗어나서 어디로 도망간단 말입니까?

 

(2, 7, 15)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내가 여기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백하는 저 부끄러운 짓들을 저지르지 않게 된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나를 비웃고 조롱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전에는 병자였지만,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고침을 받은 것이고, 그 사람도 영혼의 의사이신 바로 그 동일하신 주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병들게 되지 않았거나, 나보다 덜 병들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죄로 인한 중병에서 나를 고쳐주신 바로 그분이 자기를 지켜주셔서 나와 똑같은 중병에 걸리지 않게 해 주신 것임을 깨닫고서, 나와 마찬가지로, 아니 나보다 훨씬 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3, 7, 13)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여 불평하고 화를 내는 사람들은, 동일한 사람과 동일한 날과 동일한 집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다른 지체들이 서로 다른 일들을 하는 것이 합당하고, 이전에는 허용되었던 일이 세월이 흐른 후에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으며, 한 지역에서는 허용되거나 의무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일이 다른 지역에서는 금지되고, 어기는 경우에는 벌을 받는 것이 합당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의"는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며 변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의"가 하나가 아니고 여럿인 것처럼 보이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의"가 적용되는 각각의 시대들이 늘 똑같은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여서 서로 다른 시대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짧아서,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이전 시대들과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험해서 알고 있는 시대와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반면에, 동일한 사람의 몸이나 동일한 날이나 동일한 가정에서는 각각의 지체나 각각의 시간들이나 각각의 사람들에게 가장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자에 대해서는 화를 내고, 후자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것입니다. 

 

 

(작성중)

'갈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조] 다정가 - 이조년  (0) 2023.01.26
[시] 민간인 - 김종삼  (0) 2023.01.26
[시] 권학문 - 주희  (0) 2023.01.17
[책] 코스모스 - 칼 세이건  (0) 2023.01.11
[시] 항아 - 이상은  (0) 2023.01.11